광무식당 고무순 씨
우리가족 ‘뒷집 할매’
“할매, 할매 세 끼 먹는 김에 우리도 좀 같이 노나 먹읍시다.” 관절염 수술을 받느라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쉬었던 고무순 씨를 다시 가게에 앉힌 말이다.
할매가 없던 사이 ‘뒷집 할매’ 밥맛을 그리워했던 부산도시공사 직원들은 이제야 속 편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식당이자 휴게실, 약국까지 만능 공간
‘뒷집 할매’. 광무식당 고무순 씨를 부르는 별명이다. ‘광무식당’이라는 어엿한 이름도 있건만, ‘뒷집 할매’로 더 잘 통한다. 무순 씨는 1971년 스물네 살, 부산으로 시집와 지금의 식당 자리에 자리를 잡은 후, 50여년을 이곳에서 보낸 터줏대감이다.
“원래는 지금 부산도시공사 자리에 있던 광무초·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분식집을 했어. 그러다가 1994년 공사 기초공사를 시작하면서 학교가 헐리고, 남편도 죽었지. 세 남매를 두고 막막하던 시절이었는데, 공사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국수랑 라면을 팔면서 살림을 이어올 수 있었어. 고마운 일이지.”
부산도시공사와 뒷집 할매의 첫 인연은 개소식이었다. 건물이 완공되고 행사를 하던 날, 공사 직원이었던 신동훈 씨가 칼이며 도마, ‘다라이’ 등 필요한 물건을 무순 씨에게서 빌렸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무순 씨는 ‘뒷집 할매’가 되었고, 식당은 점심시간이면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들어찬 공사직원들로 북적이게 됐다.
“오는 순서대로 식탁에 앉아서는, 자기들이 알아서 반찬이며 물이며 안쪽으로 전달하는 거라. 내가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아플 때는 알아서 음식도 퍼먹고 많이 도와줬어.”
부산도시공사 직원들에게 이곳은 밥을 먹고 난 후 잠시 쉬었다 가는 휴게실이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약이나 반창고를 찾는 약국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식당 이상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든든하게 받쳐주는 가족처럼
무순 씨와 부산도시공사가 인연을 맺은 지도 약 25년. 긴 시간만큼 쌓인 기억들도 많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함께 나누는, 말 그대로 ‘가족’처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중 무순씨에게 남은 가장 고마웠던 기억은 큰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공사 직원들이 현수막을 걸었던 일이다. 밥을 먹으러 온 직원들이 소식을 듣고선 그 자리에서 사비를 모아 축하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무순 씨는 고마운 마음에 일기장에도 그날 일을 남겼다.
“좋은 일만 있었겠어? 조문 갈 일도 생기고 그랬지. 그럴 때면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하라고 마음으로 기도했어. 또, 워낙 오래 지키고 있다 보니, 헤어진 인연들도 많아. 한 명 한 명 다 꼽을 순 없지만, 퇴직하면서 들러선 ‘그동안 밥 잘 먹었다’, ‘앞으로 건강하시라’ 인사하고 가는 뒷모습을 배웅하곤 했지.”
최근 무순 씨네 가게는 한적한 편이다. 옛 단골들이 공사를 많이 떠났고, 주위에 밥을 먹으러 갈 만한 가게들도 여럿 생겼기 때문이다. 복작거리던 때를 생각하면 조금 아쉬울 법도 하건만, 가까이 있어 오가며 안부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순 씨에겐 참 고마운 일이다.
“공사를 떠올리면 그저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와.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키우기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어. 나뿐만 아니라, 공사 사람들은 이 동네를 살뜰하게 챙겼어. 명절에 상품권 같은 게 나오면 주민들한테 전달하고는 했지. 후배 직원들도 주위를 더 넓게 보면 좋겠다 싶어.”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면 바로 앞 부산도시공사 건물을 향해 ‘모두에게 좋은 하루이길’ 기도한다는 무순 씨. 앞으로도 공사의 ‘뒷집 할매’로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