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쭈쭈바를 입에 물고 달리던 그 골목을, 말뚝박기의 아찔함과 무던히도 끊어먹던 고무줄놀이의 추억도….
하지만 그곳에 선 순간 그때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 그곳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그린벨트 해제가 심의통과되면서 개발이 예정된 센텀2지구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고향이고 추억일 이곳.
때론 환희이고 고독이며 사랑이었을 그 순간의 풍경들을 담아보았다.
문만 열면 이웃집 대문이 마주하던 곳,
석대동 오랜 골목길. 집집마다 거미줄처럼 엉겨 있던 전선줄은 우리를 잇는 통신선이었을까.
눈만 뜨면 만나던 동네 친구들과 골목길 바닥에 그려 넣던 흰 그림과 싱거운 농담들.
별 것 없이 웃고 울던 빛나던 나날이 지금도 그곳에 살아 숨 쉰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은행나무 한 그루.
그때 나이가 20살이라던 녀석은 30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나이만큼 고장 난 건 나뿐인가.
오래된 동무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그늘을 쐬어 본다.
나무와 자전거 뒤로 그림자가 진다.
빛과 그림자가 만든 평화로운 회화.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쉼이 이곳에 있다.
붉은 장미가 차가운 철조망을 타고 오른다. 철망 너머는 멈춘 시간의 편.
시멘트가 지워진 건물,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놀이터는 옛 영광을 기억하고 있다.
멈춘 시간의 기록을 되살리려는 붉은 장미의 염원. 그들은 굳건히 철조망을 넘어 닫힌 시간을 넘는다.
다시 생동의 시간, 꽃피는 계절이 왔다.
세월만큼이나 바쁘게 흘러온 내천, 석대천. 세상사 늘 좋을 수만 없는데도 푸른 녹음 속 물길소리는 늘상 걱정 없이 청명하다.
힘든 시간, 어려운 고비 다 그럭저럭 지내온 것은 다 물길 옆을 걸어서다.
걱정도 미움도 다 흐른다는 것, 다 지나간다는 것을 너로 인해 배운 덕분이다.
비탈진 길을 올라야 볼 수 있다. 고된 땀을 흘려봐야 알 수 있다.
반송동 언덕배기 위에 서보면 모든 것이 발아래, 두려울 것이 없는 곳.
어릴 적 나를 키운 오래된 빌라도, 저 멀리 화려한 센텀의 고층 빌딩도 다 한눈에 담긴다.
내 심장의 진폭을 움직인 과거와 미래, 오늘의 포부가 여기 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