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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대에서 꽃길을 걷다 석대화훼단지의 어제와 오늘

움츠렸던 계절이 지나고 따뜻한 계절이 찾아오면 덩달아 바빠지는 곳이 있다.
바로 동래에서 반송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석대화훼단지다.
석대천 주변 약 5천여 평의 면적에 푸릇푸릇한 식물을 품은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
이곳은 도시에서 보기 힘든 비닐하우스와 수백 가지 품종의 식물, 그리고 따뜻하고 정겨운 사람냄새로 가득하다.

사람과 꽃이 아름다운 곳

주말이 되면 석대화훼단지는 꽃과 나무를 사러 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촘촘하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농원 앞 좌판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진열되어 있다. 봄이 시작되는 2월부터 가족의 달 5월까지는 석대화훼단지가 가장 바쁜 기간이다. 추운 계절을 지나 따뜻해진 봄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이 푸르른 식물을 구경하러 이곳을 찾기 때문이다.
석대화훼단지는 사람과 꽃이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집에서 재배할 상추 모종을 사러 온 할머니부터 인테리어를 위해 화분을 구매하는 신혼부부, 체험학습 준비물로 방울토마토를 사러 온 어린이까지. 석대화훼단지의 정겨운 분위기는 사람과 꽃이 함께할 때 더 빛을 발한다.

올해 확산된 코로나19는 석대화훼단지 풍경을 바꿔놓기도 했다. 가장 손님이 많이 찾는 봄의 시작에 발길이 뚝 끊긴 석대화훼단지의 모습은 오랜 기간 장사를 해온 상인들에게도 낯선 풍경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비교적 빠르게 회복된 곳 역시 화훼단지다. 밀폐되지 않은 공간이라 화훼단지로 나들이를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사람들이 실내에 식물을 들이기 위해서 석대화훼단지를 찾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사야 할 땐 항상 석대화훼단지를 찾았어요.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고 부모님이 자주 오시던 곳이라 자연스럽게 찾는 것 같아요. 친구의 창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선물한 화분도 여기서 구매했어요. 안보배 (27, 직장인)
석대화훼단지

석대화훼단지를 찾는 이유

석대화훼단지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약 100여개의 농원이 큰 단지를 이루고 있어 수백 가지 품종의 식물을 눈으로 보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또 상인들이 농장에서 고른 싱싱한 식물을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적어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석대화훼단지에 위치한 농원이 모두 비닐하우스라는 점도 좋은 식물을 제공하는 비결이다. 비닐하우스는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춰준다. 내부의 천고가 높고 바람이 잘 들며,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덕분이다. 또 직사광선을 비닐로 한 겹 걸러내 주어 유리창만으로 햇빛을 받는 건물에 비해 식물의 광합성도 활발하다.
최근 실내공기 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인테리어를 위해 화훼류 식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보기에도 좋고 공기정화 기능까지 있는 식물이 인기다. 석대화훼단지에서 많이 팔리는 식물은 몬스테라와 아레카야자, 올리브나무 등이다. 가정에서 미니텃밭을 가꿔 채소를 키워 먹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재배가 가능한 상추와 방울토마토, 고추 등의 모종이 잘 팔린다.

우리 집 식물은 다 여기서 샀어요. 단골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식물 관리하는 법도 알려주고 죽어가는 식물을 가지고 가면 관리도 잘해줘서 매번 거기만 가요.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어서 정말 좋아요. 김영주(38, 주부)
석대화훼단지

오염된 석대천에서 꽃피는 공간으로

석대동은 원래 마을 전체가 평평한 분지에다 마을 앞을 가르는 석대천 덕분에 논농사가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석대천의 상류가 철거민 정책이주지로 개발되면서 생활오수가 하천을 오염시켰고, 정화되지 않은 오수가 하류부로 흘러들어왔다. 석대천 교각 아래로 새까맣게 썩은 하수가 유입됐고, 자연형 하천인 하류부의 수질은 악취를 내뿜을 정도로 오염됐다. 당시 석대천은 반송동 주민의 생활오수가 모이는 거대한 하수구였다.
농토가 점차 도심과 가까워지면서 흘러드는 생활하수 등으로 농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었지만, 그린벨트에 묶여있는 하류부지역의 땅을 다른 방법으로 이용할 수도 없었다. 이에 70년대 후반부터 농민들은 반송로변을 따라 비닐하우스를 조성했고, 수익성이 좋은 화훼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80년 부산시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아 본격적으로 꽃단지를 이루게 된 것이 오늘날 석대화훼단지에 이르렀다.

석대화훼단지

주민과 상인들의 삶의 터전

예부터 석대천은 논농사를 짓는 농부와 주민들의 삶 한가운데를 관통해왔다. 그리고 지금은 석대화훼단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특히 상인들은 석대화훼단지가 그들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석대화훼단지 상인들 중 대부분은 20~30년동안 화훼 장사를 해온 베테랑들이다. 석대화훼단지에서 일하면서 자녀들의 학교부터 결혼까지 보낸 사람들이 대다수일정도로 이곳은 그들에게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상인들에게는 석대화훼단지가 집이자 일터였던 시절도 있었다. 365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훼단지 비닐하우스 안에 건물을 지어 생활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하지만 2014년 장마철 폭우로 인한 석대천의 범람으로 화훼단지 1㏊가 침수를 겪은 이후부터는 비닐하우스 내 건물에서 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석대화훼단지는 상인들에게는 물론 손님들에게도 추억과 일상을 함께한 곳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지인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 주기 위해,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손님들은 이곳에 들러 식물을 사간다. 꼭 꽃을 사지 않더라도 사계절 언제나 푸르름을 느낄 수 있는 도심 속 선물 같은 공간으로 때로는 위로를 받고 정을 나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치는 공간이자 상인들의 삶의 터전인 석대화훼단지. 사람과 꽃이 함께 어우러져 더 아름다운 석대화훼단지는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석대화훼단지

봄봄화원

강민경, 강경미 자매

강민경, 강경미 자매

Q. 농원에서 일하는 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더울 때는 덥고 추울 때는 추운 곳에서 일한다는 게 가장 힘들죠. 하지만 식물을 가꾸는 동안 힐링도 되고, 손님 들이 만족하신 뒤 재방문해 주시거나 지인들을 데려오실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낍니다. 다른 곳보다 더 독특한 식물, 더 예쁜 화분과 장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석대화훼단지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A. 출산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2018년 여름에 친언니와 함께 석대화훼단지에 가게를 열었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저희 집 베란다에는 어머니가 키우는 식물들이 많이 있었어요. 어머니 밑에서 식물 관리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워왔기 때문에 농원 일을 시작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또 우리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보니 주변 상인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대부분 50~60대 어머니, 아버지라서 아기도 손주처럼 돌봐주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챙겨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대동농원

김명례, 김병태 부부

김명례, 김병태 부부

Q. 언제부터 석대화훼단지에서 일하셨나요?

A. 27년 전 남편과 결혼해서 석대화훼단지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학교에서 조경을 전공해서 이곳에 실습을 나와 일하다가 사업을 시작했고요. 석대화훼단지는 스물여 섯부터 제 청춘을 다 바친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주말에도 일하다 보니 아이들과 손잡고 어디 한번 놀러간 적이 없는 게 제일 마음 아파요. 그 흔한 가족사진도 하나 없어요. 그래도 여기서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고 올해는 딸이 시집도 가네요

Q. 오랜 기간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A. 우리 가게는 모종을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원래는 꽃집을 했는데 15년 전부터 모종으로 바꿨죠. 경기가 어려워지면 손님들이 꽃은 안 사도 모종은 키워서 먹을 수 있으니 사가시더라고요. 손님들 중에는 재배 후 남은 과일, 채소를 가져오는 분들도 많으세요. 구입한 모종이 잘 자란 모습을 찍어서 보여주는 손님들도 있는데 그런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열매가 잘 열리는 좋은 종자를 판매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