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회동동 금사공단 일대 공장 속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한 예술지구p.
생산시설이 문을 닫고 유휴부지로 남게 된 산업 구조물을 재해석하여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살린 공간에는 예술이라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부산과 부산지역 예술인 그리고 예술지구p.
예술인이자 디렉터로, 그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함께 한 이호섭 대표를 만났다.
낡고 오래되어 방치된 공간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부산 금정구 금사공단의 욱성화학㈜ 물류창고는 한때 폐 공간이 될 뻔했지만, 몇 년 후 도시의 재생과 예술의 자생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공장이 이전하고 물류창고만 휑하니 자리를 지키던 터. 그마저도 고가도로가 들어서면서 일부 공간이 잘려나가 효용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예술지구p는 과감하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등장했다.
“우리가 서 있는 건물은 본래 단층 창고였어요. 굉장히 오래된 건물이었고, 동선을 봤을 때도 비효율적인 공간이었죠. 맞은편 건물도 마찬가지였고요.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볼까 고민하다가 예술공간으로의 변모로 가닥이 잡혔던 거죠.”
이호섭 예술지구p 공동대표이자 공연기획 전방위 예술극장 ‘금사락’ 대표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술지구p의 탄생을 되짚으며 이곳이 어떻게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욱성화학㈜은 부산에 기반을 둔 기업으로, 오래전부터 지역 예술인을 후원해왔다. 그런 기업이 공장의 유휴부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해볼 것을 지역 예술인들에게 제안했고, 약 1년간 부산지역 예술인이 함께 머리를 맞댄 끝에 예술지구p가 탄생했다.
“한때는 저도 음악에 심취하던 예술가였고, 지금도 여전히 예술가예요. 다만, 현실에 발을 두고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죠. 예술지구p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도 좋겠다고 마음먹은 건 ‘공연장’이 들어설 거라는 얘기 때문이었어요. 공사 현장 소장으로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음악을 하는 후배들이 조금은 편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싶었죠.”
부산을 벗어나 타지에서 생업을 이어가며 예술하던 이 대표에게 예술지구p의 운영은 새로운 도전이자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더욱이 과거 낡은 공장이었던 터에 새로이 예술공간을 짓는 일은 실행하기 전엔 다소 난감한 과제였다고.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창고 형태를 보고서 든 생각이 ‘난감한데!’였어요. 특히나 회동동은 부산에서도 꽤 외곽에 자리한 곳이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서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게 아주 의미있는 일이잖아요. 그 생각에 도전해보자 싶었죠.”
이처럼 뜻이 맞는 예술인들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으로, 지역 예술가를 위한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인 공간을 목표로 문을 연 예술지구p는 고가도로 공사로 삼각형이 된 빈 건물은 예술가 레지던스와 전시장이 있는 ‘창작공간p’로, 단층 창고는 철거 후 신축해 예술극장 ‘금사락’과 사진 및 미디어 공간 ‘포톤’으로 재탄생시켰다.
이곳에는 두 개 전시장과 공연장(금사락 홀), 창작스튜디오,강의실, 포토스튜디오, 디지털 입·출력실 등이 들어섰고 작가, 뮤지션, 관계자 등 3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인 ‘G하우스’가 자리했다. 다양한 장르의 개별단체가 모여 유기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창작공간과 주거공간을 한데서 모두 누리며 오로지 창작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곳 예술지구p는 공간을 대표하는 장르별 디렉터가 있는 공동체제예요. 예술인 세 명이 독립적으로 ‘창작공간p’와 ‘금사락’, 그리고 ‘포톤’을 운영하죠.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건 디렉터들 모두 예술에 대한 시선과 본질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예술지구p의 방식은 좀처럼 보기 힘든 사례다. 기업과 예술인의 조합이라면, 자칫 기업홍보 등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실적에 치중한 것이 아닌 ‘지역 예술가를 위한 창작공간’이라는 본질을 흩트리지 않는 지원이었기에 예술지구p는 독자적인 운영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다.
그중 금사락 홀의 경우, 이호섭 대표의 음악적인 이해가 기반이 됐다. 음악을 업(業)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밴드 <모나드>로 활동하면서 음악인으로서의 삶은 줄곧 이어온 터다. 게다가 현장 소장으로 일하며 얻은 건축학적 지식까지도 예술지구p 탄생에 한몫했다.
“국내의 공연장을 보면 처음부터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곳은 드물어요. 그러다 보니 흡음이나 음향상태가 좋지 않거든요. 금사락은 오로지 음악을 위해서 실현한 공간이에요. 공간을 보시면 층고만 해도 6m가 넘죠. 시각적으로도 개방감과 풍부한 공간감을 연출할 수 있어요.”
소위 ‘진짜’ 음악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만들었다는 금사락에서는 국내 락밴드 공연은 물론 부산지역의 실력 있는 뮤지션 지원과 신인 발굴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이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호섭 대표가 이곳의 운영을 맡은 지도 어언 7년 째. 이 대표는 이곳에 처음 발 디딘 순간을 떠올리며 공간에 대한 애정을 내비친다.
“예술지구 자체가 포괄적인 의미예요. 이곳 하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발전하자는 의미에서 ‘지구’가 된 거거든요. 자발적으로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이제는 신진작가들뿐만 아니라 기성작가분들에게도 공간을 내어줄 계획입니다. 돌파구를 찾고 싶을 때,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누군가는 예술지구p의 위치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지만, 이호섭 대표는 선보이는 국내외 작품과 공연의 질이 높다면 방문객은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다독인다.
“저 또한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듯이 누군가는 또 뒤를 이어나가겠죠. 예술이 자생하기란 쉽지 않지만, 예술지구p는 예술인이 예술인을 지원하는 구조로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어요. 예술지구p의 목표는 결국 자생이에요. 우리는 먼 미래에도 ‘살아남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술공간으로 이 공간을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분주히 지나가는 차들과 기계음만 가득하던 터에 새로운 예술공간을 덧입히기 위해 세밀한 작업을 거친 곳, '예술지구P'는 이제는 공단을 넘어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호섭 대표는 지금도 여전히 예술지구p에서 예술인이자 디렉터로 부산지역 예술을 위한 끝없는 도전을 하고 있다. 지역 예술공간의 존폐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이어진 예술지구p, 그리고 그의 예술을 향한 걸음은 예술인과의 상생과 예술만의 자생이라는 이름으로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2013년 12월 부산 금정구 금사공단 지역의 ㈜욱성화학 소유의 물류창고 2개 동을 리노베이션하여 대지 1464.47㎡에 신축 3F[연면적 760㎡] 및 개조 3F[연면적 1018.2㎡]하여 설립된 복합예술공간. 시각미술, 사진, 미디어아트, 창작 스튜디오, 공연예술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비영리 단체들이 모여 운영하는 공간으로 전시장, 공연장, 레지던스 스튜디오 등을 두루 갖추었다.
[창작공간p] 순수미술분야.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전시 기획과 부산의 신진작가 발굴 및 발표의 장
[금사락] 전방위 예술극장. 공연장(스탠딩 500명 수용공간, 250좌석), 스튜디오(합주시설, 녹음시설, 지역 인디 뮤지션을 위한 공간), 레코딩룸, 악기레슨 등 대중음악을 지원하는 공간
[포톤] 사진, 미디어 등 매체미술 전시 기획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