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영 ㈜제이케이크래프트 대표

새로운 발효 전통을 이어가는 일

집마다 가보처럼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를 따라 술을 빚어온 우리네 전통 가양주(家釀酒) 문화.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안타깝게 사라진 이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색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이가 있다.
성공적이었던 소믈리에 생활을 접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전통주 사업을 시작한 조태영 대표다. 전통적인 제조법에 자신만의 양조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부산의 맛을 빚어가는 그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빚어낸 우리 술 ‘기다림(gidarim)’

사직동 골목길에 위치한 ㈜제이케이크래프트의 하루는 오전부터 분주하다. 1층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기다림34.’ 조태영 대표가 34살이 되던 해 출시된 점과 회사 주소가 34번지인 점이 반영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현재까지 출시된 기다림 시리즈는 청주(淸酒)를 포함해 총 4종. 하지만 연구개발 단계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무궁무진하다.
“제 전공이 양조학이에요. 주종을 막론하고 집에서 직접 주류를 만들어보는 게 취미이기도 하고요. 옛 문헌에 등장하는 술 이야기도 찾아봅니다. 거기서 과거 조상들의 양조법을 배우고, 기록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동안 제가 쌓아온 양조기술을 토대로 나머지 과정을 추론해서 접목시켜요. 이 과정을 거쳐 기다림이 완성되는 거죠.”
과거와 현재의 지혜가 함께 완성시킨 술. 그래서일까, 기다림 시리즈는 맛이 유난히 부드럽다. 그는 이 특별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무려 100일의 시간을 투자한다. 일반적인 막걸리 생산기간에 비하면 몇 배나 긴 시간이다. 그동안 쌓아온 독자적 기술을 녹여내는 시간인 것이다. 세분된 발효와 숙성과정을 지나는 동안 향미는 더해지고 숙취유발 물질은 빠져나간다. 새로운 부산의 맛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와인 전문가에서 전통주 전문가로, 우연한 계기가 바꾼 미래

지금이야 전통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조태영 대표는 와인 전문 소믈리에로 주류업에 발을 담궜다.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더 잘하고 싶었던 젊은 시절의 그는 제대 후 머리가 채 자라기도 전 일본의 식음료전문기술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열정이 뜨거웠다.
“처음 관심을 가졌던 건 칵테일이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까 주류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레 와인을 공부했고, 또 일본에 머물렀으니 사케도 공부하게 됐죠.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아요.”
소믈리에로 활동할 당시의 그는 교육이나 강의, 각종 기업행사에 불려 다닐 정도로 성공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가 고작 29살 무렵이니 제법 이른 나이에 안정 궤도에 진입한 셈. 하지만 그는 다시 모험을 선택했다. 해외 양조장(와이너리)과 양조전문대학원에 지원한 것이다. 결과는 모두 합격.
그런데 예상치 못한 선택의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 재미로 수강했던 전통주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편견을 깨는 다양한 우리 술을 접하며 잠재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평소 조주(造酒)가 취미인 만큼 단점은 없애고, 장점은 부각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열정 하나로 시작한 사업이 올해로 벌써 4년째. 그는 오늘도 술을 빚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옛것을 발전시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제이케이크래프트의 사업군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전통주 분야와 비누, 샴푸 등을 제작하는 생활제품 분야다. 전혀 다른 분야인 것 같지만 결국 맥락은 같다. ‘기다림’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에서 효모, 유산균 등의 유효 미생물을 추출해 ‘기다려온’ 생활제품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소비자 반응이 좋아 백화점과 면세점, 마트에까지 입점한 상태다.
“제가 화학제품에 예민한 편이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다려온’ 제품들은 더 깊이 연구해서 시중에 내놓은 제품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계획한 건 아닌데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확장하게 되었네요.”
재미있을 것 같으면 일단 하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공감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을 때도 있다는 그는 지금도 새로운 무언가를 진행 중이다. 발효 제품군 생산 후 남은 것들로 가축용 사료를 만드는 R&D 사업이다. 버리는 것 하나 없이 부가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 그는 앞으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새롭고 독특한 것, 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헤매는 순간도 있겠지만 실패가 있어야 배움도 있음을 알기에 두렵지 않다고. 우리 고유의 발효문화를 계승해 새로운 전통을 이끄는 중인 조태영 대표. 그가 몸소 보여주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게 될까. 그 행보가 무척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조태영 대표의 리스따뜨, 여기서 확인해주세요.
  • @brewery_gida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