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테마

동&서

부산이 품은
두 개의 미술관

동에서 떠오르고 서에서 빛나다

부산의 동쪽에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서쪽에는 부산현대미술관이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다. 문화의 불모지라고 불렸던 과거가 무색하게 현재는 문화의 노다지로 거듭난 부산.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의 첫 공공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도시공사의 작품으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태는 중이다. 개성 있는 역사와 콘셉트로 시민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던지는 두 개의 미술관 이야기를 담았다.

자문 l 부산시립미술관 정종효 학예연구실장, 부산현대미술관 연규석 학예연구실장

도시의 품격을 올린

부산시립미술관
Busan Museum
of Art

탄생 배경

밀레니엄 시대를 몇 년 앞둔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시민의 예술적 욕구를 충분히 해소할 만한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지역 미술관이라곤 광주시립미술관이 유일하던 24년 전, 부산에 처음으로 생긴 공립미술관이다. 1998년 부산시립미술관 개관 소식은 장안의 화제였다.
미술관 전시를 한 번 보기 위해서는 늘 서울로 가야 했던 지역민들에게도,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서울을 오갔던 지역 예술가들에게도 부산시립미술관의 탄생은 희소식이었다. 부산의 첫 미술관 탄생은 서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난 전시와 독특한 해외 전시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미술관을 찾은 것이다.
어느덧 개관 25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지역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예술인과 시민에게 더 많은 기회와 영감을 주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왔다. 그런 까닭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은 내년 리노베이션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부산시립미술관이 어떻게 달라진 모습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눈여겨볼 시점이다.

건축물 특징

부산시립미술관은 외적으로 독보적인 건축미와 부산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산() 모양과 파도의 물결이 겹쳐 보이는 지붕은 모두 부산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예술적 요소들이다.
감각적인 외관과 반대로 미술관 내부는 정형미가 돋보인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한 구조에서 나오는 안정감이 특징이다. 로비가 있는 1층은 개방감 있는 설계로 대형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며, 크고 작은 기획전시실이 집합된 2~3층은 공감각적인 전시에 특화된 모습이다. 지하 1층에는 어린이 갤러리, 어린이 교육실, 미술정보센터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시민을 위한 교육과 행사 등이 개최된다. 또한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 작가의 예술세계를 담은 ‘이우환 공간’을 별관으로 두어 미술관다운 면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부산시립미술관은 그간 전시시설의 노후, 항온·항습 시스템 미비, 수장 공간 부족 등으로 시설적 한계에 직면해왔다. 미술관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점과 니즈도 크게 달라졌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닌 교육, 문화, 소통 등 더 큰 문화예술 서비스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런 시민의 소망에 따라 부산시립미술관은 내년 리노베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 공간은 줄이고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 공간과 동선을 확대할 예정이다. 전시 공간에서 공유의 장으로의 변화이자 새로운 문화예술 스펙트럼의 확장인 것이다.

전시예술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 지역의 미술사를 정립하는 데에 큰 공을 들였다. 일본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시기까지의 부산 미술을 시작으로 1960~70년대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그 후엔 1980년대의 부산 미술을 다뤘다. 현재는 2000년대 이후의 동시대 부산 미술에 대한 한 꼭지를 남겨둔 상태다.
부산 미술사의 맥락을 잇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전시는 상징성이 크지만, 대중에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완충하기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은 지하, 2층, 3층으로 나눠진 전시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미술사적 전시가 있을 때면 다른 전시 공간에 흥미로운 동시대의 전시를 배치하면서 균형을 맞춘다.
이처럼 부산시립미술관은 같은 장르의 전시로 합을 맞추는 것보단 다양한 장르를 배치하여 장르와 장르 사이를 연결하는 기조를 지닌다. 대중을 위해서다. 대중이 찾지 않는 미술관은 미술관이라고 불릴 수 없는 법.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대중이 미술관의 모든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부산시립미술관은 매일같이 대중의 니즈를 살핀다.
미술관을 단순히 전시예술을 관람하는 공간으로 해석하는 시대는 지났다. 창의적인 방법과 수준 높은 콘텐츠로 시민에게 다가서는 부산시립미술관. 더불어 참신한 시도와 소통을 통해 부산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처음부터 미술관보다 전시품이 돋보이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특히 별관인 이우환 공간은 작품과 건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부산시립미술관과 이우환 공간 이 두 건물 사이에는 햇살이 가득한 뜰이 있다. 야외조각공원이다. 이곳을 거닐다 보면 걸음을 뗄 때마다 영감으로 가득 찬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울창한 나무와 잔디밭 곳곳에 숨어있는 조각 작품을 찾는 것도 재미다. 이우환의 ‘관계항-안과 밖의 공간(Relatum: Outside-Inside)’부터 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enheim)의 ‘Black 스피커 유닛’, 이일호의 ‘정신과 물질’,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216.5 ARCx11’ 등의 작품을 산책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굳센 강철과 화강암도 예술가의 부드러운 손끝에서는 의미를 지닌 무엇이 된다. 우리는 그 무엇을 통해 우리답게 사는 법을 고민한다. 누구나 평등하게 ‘일상 속의 예술’을 완성할 수 있는 부산시립미술관. 이곳에서 즐기는 산책이 유독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자연, 인간과 동행하는

부산현대미술관
Museum of
Contemporary
Art Busan

탄생 배경

부산현대미술관의 탄생은 부산 문화예술 지도를 바꾼 큰 사건이었다. 그간 부산의 문화예술 인프라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자리한 동부를 축으로 흘러갔다. 그런 까닭에 상대적으로 문화 혜택을 누리기 힘들었던 서부권 시민들이 가장 바라던 일은 인근 문화예술 인프라의 건립이었다.
마침내 2009년, 부산도시공사와 부산시는 ‘문화예술의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사명을 띠고 제2의 공공미술관인 부산현대미술관 건립에 돌입했다. ‘부산비엔날레’ 전용관으로 설정된 만큼 부산도시공사는 건축물에 부산의 정서와 의미가 충분히 담길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어려움도 따랐다. 철새 도래지(문화재 보호구역)인 을숙도에 들어서는 만큼 자연과의 조화를 철저히 고려해야 했다. 외관 자재의 색과 소재를 고를 때도 철새의 비행과 서식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과 가장 닮은 미술관을 만들고자 애썼다. 그렇게 2018년 6월, 부산현대미술관은 타 미술관의 건립과는 확연히 다른 콘셉트와 지향점을 갖고 탄생할 수 있었다. 자연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지역과 세계·일상과 예술·오늘과 내일을 연결하는 실험의 장. 서부산권 ‘문화 허브(Hub)’ 기관의 등장으로 다시 한 번 부산 예술계가 들썩였다.

건축물 특징

부산현대미술관의 건축물 외관은 오픈하자마자 미술관의 시그니처로 각인되었다. 미술관 외벽에 설치한 프랑스 식물학자 패블릭 블랑의 작품 ‘수직정원’ 덕분이었다. 수직정원에는 국내외에서 자생하는 175종의 식물을 식재해 을숙도의 생태환경과 조화를 이루게 했다. 예술이 가장 돋보여야 할 미술관의 가치와 자연과의 어울림을 동시에 담은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내부는 비엔날레 전용관의 특징을 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전시실은 대형 전시실로 우측에는 약 11m의 천고에 달하는 공간이 있어 초대형 작품 전시가 가능하다. 특이한 점은 1전시실과 2층에 마련된 2전시실이 연결되어 2층에서 1층에 전시된 작품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관람객의 시야와 사고를 확장하는 기회로 연결된다.
지하 1층에는 어린이를 위한 공간, ‘책그림섬’이 있다. 을숙도의 갈대숲을 모티브로 조성된 이곳에는 약 1,100여 권의 도서들이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3~5전시실의 경우, 4전시실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개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내부 통로를 통해 전시실을 오갈 수 있다. 이런 건축적 특징은 낯설지만, 전시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에 좋은 포인트다.

전시예술

부산현대미술관은 개관부터 현재까지 ‘자연’, ‘뉴미디어’, ‘인간’을 주요 의제에 맞춰 지난 4년간 국내의 역량 있는 미디어아트 작가들을 소개했다. 개관 당시에 스위스의 유명한 사운드아트 작가 지문(Zimoun)을 초대하여 시청각이 조화를 이루는 디지털 사운드 작품을 선보였다. 2019년에는 국내외 역량 있는 디지털 작가들을 중심으로 <완벽한 기술>이라는 전시를 진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부산 지역 미디어아트의 시작과 계보를 탐구하는 <새로운 매개들>이라는 전시를 시민에게 공개했다. 이 밖에도 <마음현상: 나와 마주하기>(2019), <자연, 생명, 인간>(2019), <지속 가능한 미술관>(2021) 등 자연과 인간을 탐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전시는 물론 평면, 설치미술, 공간 미술,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미술 장르를 꾸준히 선보이는 중이다.
특히 부산현대미술관은 비엔날레 전용관으로서 2년마다 독특하고 흥미로운 동시대의 미술을 대중에게 내놓는다. 2022 부산비엔날레 기간에도 많은 관람객이 부산현대미술관을 찾았다. 2022 부산비엔날레는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라는 주제로 근대 이후 부산의 역사와 도시 구조의 변천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동시대성을 반영한 작품들을 가림 없이 보여주는 부산현대미술관. 향후에도 기존의 정체성을 강조한 양질의 미술 전시로 관람객의 마음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부산현대미술관 건물 뒤편에는 야외 전시 공간이 있다. 을숙도생태공원과 마주한 공간으로 걷다 보면 기분도 청량해진다. 이곳에는 을숙도를 대표하는 철새인 쇠백로를 형상화한 플라스틱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Re: 새-새-정글> 프로젝트로 이웅열 디자이너와 설치 미술작가인 곽이브 작가가 협업한 작품이다. 주목할 점은 전국에서 버려진 폐플라스틱 27톤을 작품 재료로 사용했다는 것. 부산현대미술관은 플라스틱 팬데믹을 맞이한 현시대에 시사점을 던지고, 폐플라스틱의 가치를 알리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시작한 산책길은 을숙도문화회관과 을숙도 전체로 이어진다. 을숙도문화회관 앞에는 2004년 부산비엔날레 부산 조각 프로젝트에 출품된 20점의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을숙도 조각공원이 있다. 조각공원에서 작품을 즐긴 후, 시간과 여유가 충분하다면 을숙도에서 섬 곳곳을 둘러보자. 은은하게 흐르는 낙동강,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 비옥한 습지 등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술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미학이다.

미술과 친해지는 TIP

  • 자주 마주하며 충분히 익숙해질 것

    현대미술을 가장 가까이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주 보는 것만큼 좋은게 없다.’ 같은 작품이라도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보는 것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관심을 가지는 만큼 익숙해지고 상상력과 재미는 당연히 따라옵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작년에 진행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같은 작가들은 되려 전시 작품 설명을 붙이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관객이 스스로 상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죠. 정형화된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나만의 상상과 해석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합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정종효 학예연구실장

  • 타인이 공유한 느낌을 흡수해볼 것

    흔히 사람들은 “미술은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미술전문가인 저도 충분히 공감하는 말입니다. 간혹 미술 작품 감상에 익숙한 사람들도 어려운 작품들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는 전시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도슨트를 둡니다.
    대신 미술관의 프로그램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는 단점이 있죠. 소셜 미디어가 발달한 현시대에서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먼저 전시를 관람한 타인의 느낌과 심상을 얻기 쉽습니다. 미술관 마니아들이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 공유하는 전시 정보들은 훌륭한 양분입니다. 감상평과 함께 관람 포인트까지 제시하고 있어 이를 토대로 한층 흥미로운 미적 체험이 가능합니다.

    부산현대미술관 연규석 학예연구실장

미술관 제대로 즐기는 TIP

  • 1. 각종 편의시설 이용하기

    그동안 전시만 재빨리 보고 왔다면, 앞으로는 미술관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 도서관, 영상실 등을 이용해보는 건 어떨까? 시간 낭비가 아니다.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 공간도 하나의 전시실인 셈.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누리거나 도서관에서 짧은 독서를 하면 전시에 대한 피로감도 낮아지고 심리적 여유를 충전할 수 있다. 더불어 전시를 충분히 즐겼다는 느낌과 함께 만족감도 상승한다.

    • - 부산시립미술관 ― 카페테리아, 아트샵, 미술정보센터, 도서자료실, 유모차 휠체어 대여 공간, 수유실, 물품보관함 등
    • - 부산현대미술관 ― 책그림섬, 영유아 공간, 수유실, 아트샵, 물품보관소, 토비아스 스페이스·카페, 야외 휴게공간 등
  • 2. 도슨트(docent) 해설 들어보기

    도슨트는 관람객에게 전시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와 설명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전문가다. 도슨트의 해설은 다각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대체로 도슨트의 해설은 시간표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필요 없다. 하지만 전시에 따라 도슨트 진행이 계획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미술관의 사정에 따라 도슨트 운영시간이 변경되는 일도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 - 부산시립미술관 ― 문의 Ⓣ 051-740-4261 홈페이지(art.busan.go.kr) > 관람 > 관람안내 페이지에서 '도슨트 시간표' 확인 가능
    • - 부산현대미술관 ― 문의 Ⓣ 051-220-7352
  • 3. 편한 신발과 겉옷 챙기기

    작품과 전시에 집중하려면 몸이 편안해야 하는 법. 굽 높은 신발이나 구두보다는 편한 신발을 신자. 전시 관람에는 보통 1시간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보통 서 있거나 걷는 일들이 많다. 발이나 다리가 아프면 작품 감상에 집중하기 힘들다. 또한 미술관은 작품 보존을 위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데, 개인에 따라 서늘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 겉옷을 챙겨가는 것도 좋다.

  • 4. 눈과 마음으로 먼저 즐기기

    전시를 즐길 때는 촬영은 뒷전이어도 좋다. 휴대폰도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는다면 금상첨화. 작품을 직접 마주하면 사진으로 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닿을 때가 많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사진으로 남긴다고 해서 오롯이 저장할 수 없다.
    작품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급급해서 현장에서 충분히 누려야 할 감명을 놓치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