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풍경
낙동강 곁에 자리 잡은 수변도시, 부산
생멸의 순간은 이어진다. 푸른 산맥이 낳은 구름은 바람에 흩어지고, 바다 가장자리에선 태어난 파도는 철썩거리다가 부서진다. 그리고 강은 사람을 모으고 문명을 만들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유추되는 곳만 보더라도 모두 강이 흐르고 있다. 농업의 근간이 되는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 그리고 풍부한 물. 황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 주변으로 문명이 여물어 갔던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강이 지닌 생명력은 한국을 보더라도 느낄 수 있다. 한강, 금강, 영산강 그리고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은 선진의 입구이자 기회의 장 이었다. 희망과 청춘을 안고 사람들이 모이자, 도시는 비대하게 성장했다. 그렇게 도시를 낳고, 키워내는 일조차 강의 몫이었다.
흔히 부산하면 바다를 떠올리지만, 바다의 근원은 강이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산과 바다 그리고 강을 한가득 품은 곳. 부산처럼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부산 서편에서 우직하게 흐르는 낙동강. 서부산의 매력은 이 낙동강에서 나온다. 낙동강(洛東江)은 태백산맥을 원류로 하여 남해로 흐르는 강이다. 남한 지역에서 가장 긴 강인만큼 낙동강은 영남을 먹여 살린 젖줄기다.
모든 것이 떠내려오는 유역의 일은 때때로 피로했지만, 강가에서 잠들어 깨는 건 아름다웠다. 잔물결이 전부인 저 강처럼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부력 없는 육지의 일상을 견디기 위한 노력이었는지도. 어느덧 부산은 낙동강의 풍부한 수량 곁에 어엿한 수변도시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에 강은 다시 강을 낳고 지류는 작은 혁명이라도 된 듯 뻗어나갔다. 낙동강에서 갈라져 나온 서낙동강과 평강천, 맥도강의 모습. 고즈넉한 작은 마을들을 옆구리에 끼고, 농토를 적시는 힘을 느낀다. 풍년인가 보다. 수확을 앞둔 농작물들은 논과 밭을 제멋대로 물들였다. 작은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시간과 시대를 건너온 듯 고향의 정취에 젖는다.
퍽퍽한 도시의 삶을 위로받는 시간
고향을 떠나면 어머니가 그리운 것처럼 원시를 벗어난 문명에선 날 것의 자연이 그립다.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고, 산업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크고 작은 강줄기를 따라 자라난 생태공원은 도시 속 건조한 삶의 습도를 조절한다.
부산시에는 낙동강 하구 중심으로 5개소의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삼락생태공원, 맥도생태공원, 대저생태공원, 화명생태공원, 을숙도생태공원은 갈대, 억새, 버드나무의 훌륭한 군락지이면서 수많은 철새를 먹이고 살찌워 날려 보내는 터다. 특히 맥도생태공원은 과거 벼농사 등을 짓던 농경지로 쓰이다가 겨울이면 철새들의 먹이터 겸 쉼터로 활용되던 곳이다. 현재 부산의 생태공원들은 낙동강 하류철새 도래지(천연기념물 제179호)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 덕에 생태호수, 양서류 서식지, 야생화 단지 등이 함께 조성되어 낙동강 유역에서도 멸종 위기 식물인 가시연꽃이나 멸종 위기종인 맹꽁이를 볼 수 있다. 더구나 바다와 강이 만나는 낙동강 끝자락에 자리한 하중도(河中島), 을숙도는 전국에서 가장 큰 철새도래지로, 사계절 새들의 날갯짓이 끊이지 않는다.
새들을 위해 보호하고 있는 습지지만,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친수 공간이 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부산의 숨을 자정하는 숲. 이따금 그곳에 들리는 날이면 자연에게 방 한 칸 빌려 사는 우리의 속사정을 보곤한다. 그러면 이내 귓가에 들리는 낙동의 노래와 바람을 건너뛰는 새소리. 자연이 보내는 격려이자 안부다.
몰래 감춰뒀던 근현대사의 귀중한 유산
서낙동강과 평강천 사이에는 이탈리아반도처럼 길쭉한 모양으로 강동동이 자리한다. 이름 그대로 (서낙동)강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이곳에선 어딜 가나 논밭과 비닐하우스를 볼 수 있다. 강변으로 갈수록 풍경은 향토적이다. 번화가의 화려함은 없어도 광활한 농경지는 그 자체로 낭만이 된다.
강동동에 들어서자마자 대파밭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대파는 강서구의 특산물로 한때 이름을 떨쳤다. 지천명을 넘긴 토박이들은 어릴 적 대파밭에서 파를 구워 먹은 기억을 갖고 산다. 명지동을 파랗게 수놓던 대파 재배지는 서부산권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농부들은 강동동에서 ‘명지 대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은 따가운 가을볕, 밭이랑에 한가득 물을 대고, 허리를 숙여 잡초를 뽑아내는 농사꾼의 뒷모습. ‘요령 피우지 않고, 그저 하늘이 시킨 대로 하는 것이 농사다’라고 일러주신 할아버지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른다.
낙동강의 흐름을 거슬러 대저1, 2동으로 간다면 시간을 역행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평상에 누워 할아버지께 들었던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동네. 대저동 울만리 신평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비행기 격납고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굴집’ 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격납고를 개조해 집을 만들기도 했고 축사의 창고로 쓰고 있다. 원래 신평마을 주변으로 격납고는 20여 개 정도 있었지만, 도시개발로 현재 남은 건 4개뿐이다.
이처럼 대저동 곳곳엔 근대문화 유산이 자연의 한 부분인 것처럼 남아있다. 일본식 가옥도 그중 하나다. 흔히 ‘적산가옥’이라고도 하는데 ‘적이 두고 간 집’이라는 뜻이다. 1945년, 대한민국이 해방될 때까지 일본인들이 대저동 일대 낙동강 삼각주를 점유하면서 살았던 흔적인 셈. 대부분의 일본식 가옥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100년이 무색한 건물 연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격동의 근현대사를 겪어온 사람들이 그곳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다. 강을 아무리 내려쳐도 허리가 끊기지 않는 것처럼, 모진 역사 속에도 삶은 이어졌다. 존재와 시간의 가치를 곱씹게 하는 근현대 건축물이야말로 높은 보존가치를 지닌다.
강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당연한 이치처럼 대저동에도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부산 연구개발특구가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고 부산대저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대저동에는 첨단 산업시설과 대규모 공공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물론 이러한 개발에도 옛 풍경은 독특한 정체성으로서 길이길이 남아야 할 것이다. ‘오래된 것은 다시가꾸고, 새로운 것은 크게 키우는 것’. 낙동강과 더불어 사는 우리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귀한 임무다.
시간도, 강도, 사람도 미래를 향해 흐르고
다시 낙동강의 물길을 따라 대저2동부터 강동동, 명지동까지 흘러오면 에코델타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기반을 닦는 현장을 만난다. 농경지로 쓰이던 낙동강 주변지가 미래 지향적인 수변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이다. 강동동과 대저동이 새롭게 열게 될 서부산 시대. 아직은 골조를 세우는 단계이지만, 서낙동강, 평강천 그리고 맥도강을 곁에 둔 만큼 빼어난 수변도시의 미래가 그려진다. 품격 높은 친수 주거환경과 주거·상업·업무·예술·문화가 어우러지는 복합 수변공간이 눈앞에 나타날 때가 머지않았다.
부산도시공사가 부산시, 한국수자원공사와 손을 모아 계획하고 있는 에코델타시티는 부산의 새로운 심장으로 불린다. 복합물류·산업 중심 글로벌 거점도시 조성은 미래 신동력이 필요했던 부산에 크나큰 희소식이었다. 첨단산업, 국제물류, R&D 기능이 복합된 에코델타시티가 완성되면 모두의 바람처럼 지역경제의 교두보가 되어줄 것이다.
갈대가 무성해진 낙동강과 그 옆으로 에코델타시티가 조성되는 걸 바라보며 개발의 본 모습은 ‘급진’이 아니라 ‘완급 조절’이라는 걸 깨닫는다. 첨단 도시를 디자인하되 자연 속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일. 그것은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발전시켜온 인간의 지혜다. 또한, 부산도시공사가 지켜내고 싶은 ‘공존의 가치’이기도 하다.
분명 강은 우리보다 천천히 늙고 오래도록 세상에 남을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향해 흐르는 것이 강이 지닌 숙명이다. 사람은 편을 가르지만, 자연은 편애를 모른다. 기회의 불균등이 만연해진 세상. 강줄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피어난 혁혁한 문화와 위대한 자연유산을 모두가 공평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부산도시공사가 낙동강의 힘을 빌려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이유다.
VIAGGIO
비아조 이탈리아어로 비아조는 여행이라는 뜻. 이름처럼 카페 곳곳에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첫인상은 동화에 나오는 장엄한 성을 마주한 느낌. 자연스러운 채광과 더불어 계절마다 콘셉트를 달리하여 꾸며놓는 야외정원 덕분에 ‘인생사진’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대형카페답게 넓은 주차장과 별관을 두고 있어서 가족 단위의 방문도 많은 편이다. 비아조는 강변의 카페가 뿜어낼 수 있는 최대의 낭만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이국적인 야외정원과 서낙동강의 한 귀퉁이를 전부 빌려 쓰는 듯한 규모에 놀라도 좋다. 그리스의 정취가 느껴지는 야외분수대, 남국의 해변이 생각나는 야자수 나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원해지는 서낙동강 뷰. 야외에 마련된 자리에선 유유자적 흐르는 강과 중사도를 오래도록 볼 수 있다. 쾌청한 강바람과 화보처럼 남기는 사진들은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OFFLOW
오플로우 널따란 주차장을 거쳐 이곳으로 들어서면 각층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플로우는 그 어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오더라도 ‘취향저격’할 수 있는 리버뷰 카페다. 화창한 날도,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에도 모두 괜찮다. 들어갈 땐 모던한 외관에 반하게 되고, 내부에선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서낙동강 풍경에 다시 반하게 된다. 지하 1층에는 ‘실내 정원’을 콘셉트로 한 공간이 있고 1층과 2층 사이에 1.5층이 있는 구조다. 땅과 강을 챙겼으니 하늘까지 챙겨야 인지상정. 루프탑 공간에서는 흐르는 강물을 보며 여유와 낭만을 마실 수 있다. 오플로우는 베이커리 카페답게 10시부터 2시까지는 브런치메뉴를 운영한다. 쿠키, 휘낭시에, 단팥빵, 메론빵, 올리브치아바타 등 공간만큼이나 디저트에서도 저마다의 취향을 저격하는 다채로움을 선보인다.CAFE VODA
카페 보다 서낙동강이 아래로 흐르는 강동교 근처에 있는 카페 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핫플레이스가 된 곳이다. 길 건너 전용 주차장이 있고 실내에 들어오면 무채색 중심의 인테리어가 시야를 편안하게 만든다. 야외에는 흰색, 회색 톤 중심의 실내 인테리어와 대비되는, 노을빛을 닮은 붉은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곳은 리버뷰이면서도 동시에 포레스트뷰 카페다. 카페 앞뜰에 있는 활엽수 한 그루가 계절에 따라 다른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여느 낙동강 뷰 카페가 그렇듯 카페 보다에서도 크로와상, 휘낭시에, 크로플, 소금빵, 몽블랑, 스콘 등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최신 감성 트렌드를 모아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일몰이 지는 시간에 맞춰 ‘인생 사진’을 건지러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AROUSE ROASTERY
어라우즈 로스터리 고급스러운 정형미, 실내 건축과 조경의 만남, 멋스러운 노출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까지. 공간의 남다른 해석과 조화로운 건축적 요소가 만나 앉아만 있어도 벅찬 리버뷰 카페를 만들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쪽으로 가도 되나?’라고 의심이 들어도 일단 가보자. 뉴오션골프연습장 입구로 들어가면 강변에 멋지게 들어선 카페가 보일 것이다. 어라우즈 로스터리 카페는 총 3층까지 있으며 강변 쪽은 전면 통유리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탁 트인 낙동강 뷰를 즐길 수 있다. 낙동강 건너편으로는 을숙도가 보이며 3층에는 한옥에서 영감을 얻어 꾸민 프라이빗 단체룸이 있다. 낙동강 뷰를 배경으로 삼은 카페답게 여백을 테이블이 아닌 자갈이나 나무 등 자연적인 소재로 꾸민 것에서 남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이곳 야외 공간은 반려견과 동반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JIN-MOK
진목카페 예쁜 바다색을 눈에 담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보자. ‘일천삼백리, 물길종점.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진목카페는 낙동강의 감성과 카페 주인장의 철학이 가득 담긴 명소다. 낙동강 근처에 자리한 카페지만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서 도보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라 ‘뚜벅이족’들한테도 인기다. 카페 실내에는 벽마다 큰 창이 있어, 어느 테이블에 앉아도 흐르는 강줄기를 볼 수 있다. 강과 바다가 겹치는 장면을 보며 ‘물멍’ 때리기 최적화된 곳. 진목카페의 테라스로 나가면 마치 남국의 나라에 온 듯한 야자수와 그늘막 그리고 랜턴의 감성에 빠지게 된다. 양쪽으론 낙동강이 흐르고, 정수리 위로는 비행기가 뜨는 풍경. 낮과 밤 그리고 실내외를 오갈수록 오감을 충족하는 볼거리는 풍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