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절박한 삶과 희망이 서린 장소다.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로 계단의 위치는 약간 이동했지만, 흩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간절한 마음은 여전히 계단마다 선명히 남아있다.
계단 곳곳에 자리한 동상들은 당시의 풍경을 생생히 전한다. 뻥튀기가 터질까 귀를 틀어막은 아이들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중 40계단 정중앙을 지키고 있는 ‘아코디언 켜는 사람’ 옆에 앉아 은은히 흐르는 ‘경상도 아가씨’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라는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피란민들의 아픔과 그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40계단을 올라 용두산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부산의 랜드마크인 부산타워가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굽어보며 변화를 지켜봐 온 부산타워는 마치 부산 역사의 산증인과도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과 원도심 풍광은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특별한 장면을 선사하며 마음을 탁 트이게 해준다.
용두산공원은 과거 부산 방어의 요충지였으나, 이제는 평온한 휴식을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73년에 설치된 꽃시계는 계절마다 화사한 꽃들로 단장해 용두산공원의 상징이자 부산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로 사랑받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바다의 향기가 스며들고, 부산의 역사가 바람에 실려오는 듯한 특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감도는 보수동책방골목.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지식과 문화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그 시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책방마다 빼곡히 진열된 낡은 책들은 세월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으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종이의 질감과 함께 책 속에 담긴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살아난다.
골목 곳곳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지나가는 이들이 잠시 멈추어 책 속에 빠져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월의 향기가 스며든 이곳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며, 보수동책방골목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모여들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부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해방 후, 일본인이 남긴 물건들과 피란민들이 가져온 물건들이 거래되며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다가, 1950년 미군 물자가 더해지면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전쟁 시절 피란민들의 생계를 책임졌고, 오늘날까지도 활기 넘치는 상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시장의 먹자골목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하다. 특히 전쟁 후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었던 돼지국밥은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으며, 구수한 국물과 푸짐한 양으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인기 음식인 비빔당면은 가벼운 한 끼로 피란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국제시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부산의 근현대사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공간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과 바다, 그리고 삶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자갈치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의 충무동 로터리까지 이어진 자갈밭을 뜻하는 ‘자갈처處’에서 따왔다는 설과, 해안가의 자갈과 어시장에서 팔던 물고기를 뜻하는 ‘치’가 결합해서 이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떤 유래이든 자갈치시장은 바다의 숨결과 부산 사람들의 강인함이 깃든 공간임은 분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생계를 꾸리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갔다.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이 넘쳐나 부산 경제와 삶의 중심지로서의 활기를 더해주었다. 오늘날에도 부산을 대표하는 수산물 시장으로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특별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넘실대는 파도처럼 활기가 넘치던 자갈치시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위생 문제와 낡은 시설이라는 큰 과제를 떠안았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점포들과 배수 문제로 인해 해산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방문객들에게도 불편을 주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부산도시공사는 자갈치시장 현대화사업을 추진해 위생과 편의성을 대폭 개선하며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자갈치시장은 고유의 정취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바다에서 솟구치는 파도를 형상화한 외관은 부산의 정체성과 바다와의 깊은 연결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건물 외벽은 유리로 시공한 것이 특징인데, 투명성과 개방감으로 시원한 풍광을 자랑한다.
이렇게 변모한 자갈치시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을 넘어, 부산의 역동적인 과거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활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편의성을 갖추며 이제 부산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하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